로마인 이야기 1 - 제1장 로마의 탄생, 에트루리아인

728x90

에트루리아인의 문자는 아직 완전히 해독되지 않았다. 그래서 오랫동안 에트루리아인을 수수께끼의 민족이라고 불렀다. 에트루리아라는 나라의 백성이라는 의미에서 이들을 에트루스크라고 부르지만, 이것도 고유한 하나의 민족을 가리키고 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고대에도 오늘날의 토스카나 움브리아 및 라치오 북부를 합한 지역에 살았던 사람들을 통틀어 에트루스크, 즉 에트루리아인이라고 불렀던 모양이다. 미국에 사는 사람을 모두  미국인이라고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 에트루리아인이 어디서 왔는지도 알려져 있지 않다. 

 

소아시아에서 바다를 건너왔다고 주장하는 역사가도 있고, 내륙지방에서 남하해 왔다고 주장하는 연구자도 있다. 어쨌든 그들은 기원전 9세기에는 이미 철기 제조법을 알고 있었다.
  

중부 이탈리아에는 광산이 많이 분포되어 있었다. 이 지방에 정착한 에트루리아인은 이 천연의 혜택을 활용한다. 그들은 당장 우수한 기술자가 되었다. 기술력의 향상은 경제력 향상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역시 경제력이 강한 그리스인과의 사이에 교류가 활발해졌다. 


에트루리아의 유물 중에는 그리스제 항아리가 놀랄 만큼 많이 포함되어 있다. 그것도 남부 이탈리아에 있던 그리스 식민도시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그리스 본토에서 만들어진 제품이다. 언덕 위에 살았지만 조금 떨어진 곳에 항구를 가지고 있었던 에트루리아인은 산업 외에 해상무역에도 손을 뻗치고 있었다. 

 

풍부한 광산이 있는 엘바 섬은 물론, 코르시카 섬과 사으데냐 섬에도 발길을 뻗쳤던 모양이다. 지금도 그 일대의 바다를 테레니아 해라고 부르는데, 티레니아 해는 '에트루리아인의 바다'라는 뜻이다.
  

기원전 8세기, 그들의 세력권은 북쪽의 피렌체를 흐르는 아르노 강과 남쪽의 로마를 흐르는 테베레 강 사이의 전역에 걸쳐 있었다. 이 지역에 지금도 남아 있는 도시는 앞에서도 말했듯이 모두 고대국가 에트루리아에 기원을 두고 있다. 그래서 거의 모든 도시가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다. 고대의 에트루리아는 12개 도시국가의 연방제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12개 도시 국가 가운데 알려져 있는 것은 아레초, 볼테라, 키우시, 비테르보, 오르비에토, 타르퀴니아, 체르베테리, 베이, 페루자 등 9개다. 이들 가운데 7개 도시가 지금도 건재하다. 에트루리아는 연방제였지만, 각 도시국가는 독립적인 경향이 강해서 공동보조를 취하는 것은 종교적인 문제 정도였고, 정치나 경제나 군사에서는 일치된 행동을  취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12개 도시국가 가운데 어느 도시도 다른 도시들을 제압할 만한 힘을 갖지 못했고, 그 때문에 지도적인 위치를 차지할 수 있는 도시도 없었다. 이것이 나중에는 그들의 치명적인 약점이 되었다. 에트루리아인은 사람이 죽으면 땅 속에 매장했기 때문에, 무덤의 구조도  복잡하다. 땅 위에 있는 주택을 축소하여 그대로 땅 속에 세운 듯한 느낌이다. 

 

유력자의  무덤은 벽화의 색채도 화려하고 부장품도 호화롭기 짝이 없다. 이런 것을 보면, 에트루리아인은 싸움을 좋아하지 않고 평화를 사랑하며 기술과 통상만으로 번영을 이룩한 평화적인 민족이었던 것처럼 여겨진다. 특히 그들의 조각품이 보여주는 온화한 모습은 그것을 보는 우리의 마음까지 부드럽게 해준다. 


그러나 이것은 죽음 뒤의 삶이라는 꿈에 바쳐진 장식이다. 실제의 에트루리아인은 다른 민족에 비해 특별히 평화적이지도 않았고, 싸움을 싫어하는 상냥한 성격의 소유자도 아니었다. 에트루리아인은 티레니아 해의 제해권을 둘러싸고 카르타고 및 그리스와 격전을 벌린 일도 있다. 

 

산 사람을 신에게 제물로 바치는 풍습도 있었다. 고대 로마인은 사람과 맹수가 싸우는 것을 보면서 열광했지만, 이 구경거리도 원래는 에트루리아인이 즐긴 경기였다. 또한 무덤 벽화에 그려진 향락적인 생활상을 보고, 그들이 쾌락에  탐닉하고 노동을 싫어하는 성격이었을 거라고 상상하면 잘못이다. 

 

그들은 기술력을 자랑할 정도로 근면했고, 그런 면에서의 진취적인 기질은 단연 뛰어났다. 이런 에트루리아인이 로마인에게 미친 영향은 많은 점에서 헤아릴 수 없이 크다. 기원전 8세기부터 기원전 6세기까지 에트루리아의 세력은 로마 따위는 감히 따라가지도 못할 만큼  막강했다. 

 

전성기에는 남부 이탈리아에까지 세력을 떨쳤다. 이 시대에 포 강 이남의 이탈리아 반도는 북쪽의 에트루리아와 남쪽의 그리스로 크게 양분되어 있었다. 로마는 이 양대 세력권 사이의 골짜기에서 태어난 것이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