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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맞은 시기에 인재가 알맞은 자리에 등용되어 능력을 발휘하는 예는 융성기에는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로마 역사도 상당히 오랫동안 이런 예를 보여주지만, 누마의 즉위도 그 좋은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누마는 로물루스의 초빙을 받고 로마로 이주한 동포들과는 달리, 조상 대대로 살아온 땅에 남은 사비니족이었다. 농사를 짓는 한편, 지식 탐구에도 힘쓰는 주경야독의 인물이었던 모양이다. 그의 높은 덕망과 깊은 교양은 로마에도 널리 알려져 있었다. 라틴파와 사비니파의 대립으로 경직 상태에 빠진 로마 원로원은 누마를 만장일치로 왕으로 추대했다. 사비니족의 땅까지 누마를 찾아간 장로들은 이 사실을 그에게 전하고, 왕위에 앉아 달라고 부탁했다. 누마는 처음 얼마 동안은 거절했다. 그는 이미 나이 마흔 살이 되..
에트루리아인의 문자는 아직 완전히 해독되지 않았다. 그래서 오랫동안 에트루리아인을 수수께끼의 민족이라고 불렀다. 에트루리아라는 나라의 백성이라는 의미에서 이들을 에트루스크라고 부르지만, 이것도 고유한 하나의 민족을 가리키고 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고대에도 오늘날의 토스카나 움브리아 및 라치오 북부를 합한 지역에 살았던 사람들을 통틀어 에트루스크, 즉 에트루리아인이라고 불렀던 모양이다. 미국에 사는 사람을 모두 미국인이라고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 에트루리아인이 어디서 왔는지도 알려져 있지 않다. 소아시아에서 바다를 건너왔다고 주장하는 역사가도 있고, 내륙지방에서 남하해 왔다고 주장하는 연구자도 있다. 어쨌든 그들은 기원전 9세기에는 이미 철기 제조법을 알고 있었다. 중부 이탈리아에는 광산이 많이 분..
어느 민족이든 전승이나 전설을 가지고 있다. 자신의 뿌리를 확실히 하고 싶다는 욕구는 인간에게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소망일 것이다. 과학적으로 해명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해도 좋은 일이지만, 사람들은 과학적인 해명 따위는 요구하지 않는다. 그들을 납득시킬 수 있을 정도의 논리성과 그들의 정신을 고양시키기에 충분한 이야기가 있으면 된다. 로마인에게 그것은 트로이 함락과 관련된 하나의 에피소드였다.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세계문학사상 최고 걸작의 하나로 손꼽히는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드)에 따르면, 소아시아 서안의 풍요로운 도시 트로이는 아가멤논을 총사령관으로 하는 그리스군의 공격을 받아 10년 동안이나 계속된 공방전도 드디어 종말을 맞이하고 있었다. 해변에 서있는 거대한 목마를 발견한 트로이 사람들은 그 ..